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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2007년엔 착한 어린이가 됩시다.

어제 강남역에서 착한 일을 했다. 퇴근후 종훈씨(회사분)도 강남쪽에 약속이 있데서 같이 강남역으로 갔다. 지하의 오락실 얘기를 하면서 올라가는데 종훈씨가 무언가를 보고 "엇"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종훈씨가 바라보는 쪽을 향하니 싸이언 광고가 있었다. 저 광고 한지 꽤나 오래 된 것 같은데 이제야 보셨나 생각하면서 말을 걸려고 고개를 돌리다 보니 뒤늦게 귀에 무슨 소리가 와 닿았다.


"엄마!!   엄마!!"


아...
주의력이 깊지 못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갈듯 해 보이는 어린 소녀가 엄마를 크게 부르고 있었다. 주변에 그 아이의 엄마 같은 사람은 없었다. 아이를 붙잡아 말을 걸어 보니 엄마가 지하철을 타고 가버렸다고 한다. 아무리 사람 많은 강남역이라지만 이건 그 엄마의 잘못이 크다. 뭐 잘잘못을 따질일은 아니지만...

역사에 데려다 놓으면 엄마가 바로 반대로 타고 와 찾아갈 듯해서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올라가는길에 마침 학원의 1-2학년 애들이 엄마 아빠 전화번호를 줄줄줄 외우는 걸 기억해 내서 아이에게 엄마 전화번호를 아냐고 물어봤다. 다행히도 안다고 한다.

정말 신기했던건 아이가 당황은 했으되 울지는 않았다. 왠지 그런 일을 많이 겪어본 포스가 느껴졌다. 보통 아이들은 엄마와 타의적으로 헤어지게 되면 일단 당황해서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결국 주저 앉아 울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 아이는 처음부터 한 자리에 서서 큰 목소리로 엄마를 외쳤다. 내 손을 잡고 계단을 반쯤 올라 갈때도 씩씩했고 엄마 전화번호를 묻는 순간까지 뭐 조금 있으면 엄마를 보겠지 라는 표정으로 묵묵히 나를 따라 왔을 정도였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였다. 갑자기 전화번호를 기억해 내려고 하니 기억이 나지 않는가 보다. 어...어...0....0.. 머리에서는 기억이 나는데 입으로는 안나오나 보다. 한 30초 정도 더듬더듬 하더니 결국 울상이 된다. 아이가 그 자리에서 울어 제낄까봐(내가 아이들을 싫어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울면 해결 되는 줄 안다.) 괜찮다고 달랬다. 사실 걱정보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아무리 요즘 성숙한 어린애가 많다고 해도 그 정도 되는 애들이 애늙은이 처럼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머니께서 곧 돌아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는 건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울먹이던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 강남역 매표소를 찾았다. 여기선 종훈씨가 직접 말해주고 했다. 솔직히 역무원 아저씨가 짜증을 내거나 자기는 책임이 없으니 데리고 가라고 말할 줄 알고 상당히 민감해져 있었는데 아이 엄마가 지하철을 타고 가버려서 애가 혼자 남았다고 했더니 매표하시다 말고 얼른 뒤를 돌아보시면서 얼굴에 걱정스런 기색을 비치셔서(순수히 아이에 대한 걱정이었다) 안심했다. 아 아직 세상은 살만 하구나.

아이를 매표소에 들여 보내고 그 아이의 엄마를 기다릴 것도 없이 그냥 돌아 나왔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몇분 걸리지도 않았을걸 아이가 안심하게 좀 기다려 줄껄 그랬나 싶으면서도 애 엄마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애를 패건 울건 난리부르스를 칠 것을 생각하면 그냥 그대로 돌아 나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기다렸으면 그 영특한 꼬마애가 울음을 터트리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빠를 만나서 강남역을 빠져 나오는 뒤로 역무원 아저씨의 방송이 울려 퍼졌다.



"6세 여자 어린아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아나 -_-; 그 침착한 아이가 6살이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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