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망울이 이쁜 그 아이를
결국 시설에 넘겼습니다.
까미가 저 아이에게 텃세를 부린다는 핑계로
제 이기심을 덮어서 한달후에 분양이 안되면 안락사를 시킨다는 시설에 넘겼습니다.
보내고나서 생각해보니 행당동에도 시설이 있고
기를쓰고 찾아보면 주변에 맡길데도 없지 않아 있을거 같은데
왜 굳이 구조관리협회에 보내버렸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처음 만난건 아파트 지하주차장 환기창문 앞에서 였습니다.
새카만 밤에 새카만 몸에 새카만 두눈이 또랑또랑 빛났습니다.
너무나도 멀리서 보게 된 거라서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번째 만난 것은 아파트 계단이었습니다.
길에서 만난 보스톤 테리어 두마리의 주인과 대화를 하다가
쭐래쭐래 지나가는 검은개를 보았습니다.
불러도 다른 개들이 무서워서 그랬는지 휑하니 가버렸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꽁무니를 쫒아다니면서 뭔가 바라는 얼굴이 안타까웠습니다.
세번째 만난 것은 집앞이었습니다.
마중나온 어머니께서 잠깐만 기다려라 언니가 먹이들고 나온다 하길래
또 배짱좋은 고양이가 먹이를 내놓으라고 협박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쭈쭈 거리면서 부르자 얼굴만 큰 검은 개가 나타났습니다.
고양이도 아닌 놈이 고양이처럼 제 다리에 몸을 비벼 댔습니다.
조금 있다 언니가 내려오고 허겁지겁 사료를 먹는 검은 개를 보다가
목에 나일론 끈이 어설프게 매어져 있는게 눈에 띄었습니다.
손으로 슬 만져보니 움찔거리면서 도망가지도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허겁지겁 집에가서 가위를 들고 왔습니다.
두번째 준 먹이를 먹느라고 지 목에 가위를 들이대는 것도 모릅니다.
싹둑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일론 끈이 잘려나가자 그제서야 눈을 들어 저를 바라봅니다.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사료를 먹어댑니다.
손으로 목 주변을 만져보니 다행히 묶인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상처는 없었습니다.
대신 길거리 생활이 길었는지 털이 엄청나게 뭉쳐있었습니다.
가위를 들고 목주변과 머리, 귀 주변의 털을 잘라주었습니다.
뭘믿고 그러는지, 아니면 성격이 워낙 여유로운지 그냥 몸을 맡깁니다.
왠지 이대로 보내면 금방 죽어버리거나 개장수에게 끌려 갈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보니 까미도 제작년 이맘때 목에 나일론 목끈이 매어져 있었죠.
엄마한테 가서 목욕이나 시키자고 그러고 덥썩 안아들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거의 30분이 넘게 물세례를 퍼붓고 샴푸로 3번이나 했는데도 땟국물이 줄줄 흐릅니다.
결국 마지막엔 엄마의 도움을 받아서 씻기고 엉덩이와 꼬리부분에 뭉친 털을 잘랐습니다.
방에다 놓고 나머지 털을 다듬고 빗기고 말리고 그렇게 1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부지가 주무시러 가시길래 마루에 내놓았더니
허락도 안맡고 까미밥을 훔쳐먹습니다.
까미가 놀래서 뛰어내려오더니 빈 밥그릇을 보고 분노합니다.
으르릉 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달려들어서 물어뜯어 놓습니다.
검은개를 얼른 안아들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까미 입에서 털이 한웅큼이 나왔다고 합니다.
지도 유기견이었으면서 텃세가 너무 심합니다.
다시 마루에 내놓으니 까미가 소파 위에서 이를 들어냅니다.
일단 방에 들여놓고 재웠습니다.
다음날 끙끙대는소리에 새벽 6시에 눈을 떳습니다.
어제 밥도 3그릇 먹고 물도 4번이나 갈아서 먹여놨더니
화장실에 가고 싶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마루에는 아부지가 티비를 보고 계셔서 일단 신문지에 볼일을 보라고 했는데
볼일을 보지 않습니다. 난감했습니다.
결국 아부지에게 개 한마리 주워왔데면서 검은 개를 내보냈습니다.
온가족이 일어나서 검은개 편을 들었습니다.
의외로 아부지가 선선히 이쁘다는 말을 하십니다.
순간적으로 고민 됐습니다.
이대로 조금만 뭉개고 있다가 까미처럼 그냥 키워버리면 안될까.
까미도 한달만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가 그냥 키우는건데
검은개도 어떻게 안될까...
그런데 까미가 또 달려듭니다.
아부지 이전에 까미의 허락이 필요할 듯 합니다.
10시가 넘어서 유기견 관련 사이트에 있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하니
성동구청에 전화하라고 합니다. 성동구청으로 전화를 했더니
연락을 하기 싫었던 구조 센터의 전화번호를 알려줍니다.
저기 가면 끝인데...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헤집습니다.
그런데 손은 무심히도 번호를 누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통화를 했는지, 뭔말을 했는지...
"저희쪽에 오면 한달뒤에... 아시죠?" 라는 말에
"네" 라고 급하게 대답을 해 버렸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후쯤에 사람을 보내준다고 합니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옵니다.
내가 귀찮아서, 내가 힘드니깐
괜히 핑계를 대고 이 아이를 사지로 내보내는게 아닐까...
그냥 털이나 잘라주고 예방접종 한다음에 길거리에 풀어놓는게 더 좋지 않을까...
복잡한 마음을 안고 어느덧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머리가 크다고 해서 (대갈)장군 이라 이름붙인 검은개는
제 옆에서 숨쉬는 소리도 없이 같이 잠들었습니다.
눈만 잠깐 감은 것 같은데 요란한 벨소리에 눈을 떳습니다.
모르는 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엉겁결에 전화를 받으니 오후 언젠가 온다던 구조대원이 벌써 왔습니다.
대갈장군을 안아들려고 했더니
뭔가 눈치를 챘는지 의자 밑으로 피합니다.
뭔가 마음속에서 확 올라오는것을 슬쩍 모른척합니다.
대갈장군을 안고, 엄마는 까미를 안고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엘레베이터를 타는 대갈장군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습니다.
아냐
난 착한 일을 하는거야
거기서 일주일만 있다가
바로 좋은 주인한테 보내질꺼야
넌 성격도 좋잖아
활발하고 장난도 잘치고 순해서
어느 누구라도 좋아할꺼야
스타랙스문을 여니 케이지가 보였습니다.
까미가 10마리는 들어가도 될듯한 케이지에 대갈장군을 밀어 넣으니
필사적으로 달아나려고 합니다.
"두마리에요?"
하는 질문을 듣더니 까미 얼굴이 경악으로 바뀝니다.
나쁜년 눈치만 빨라서...
한마리에요...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없습니다.
서류에 싸인을 하라고 합니다. 차안에서는 먼저 잡혀온 닥스훈트가 짖어 댑니다.
"............안락사를 시키는 것에 동의합니다"
싸인을 합니다. 구조협회도 좋은일을 하고 있고, 시설의 한계로 안락사를 시키는 것도
모두 이해를 하고 있는데 왠지 마음이 아픕니다.
내손으로 한 생명을 거두어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 같아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결국 남은건 집안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털뭉치와 후회 뿐...
장군아...
6년전 죽어버린 장군이를 닮은 장군아...
정말 좋은 주인 만나렴.
그리고 20년 살렴!
사랑받으면서, 내가 못 다 준 사랑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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